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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다음 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술 날짜는 3월 4일 입원은 3월 3일이었다. 입원 당일 오후에 도착하면 되니, 3일 오전 비행기를 타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하필 대체휴일 때문에 연휴가 생겨 제주에서 김포로 가는 비행기 티켓이 모두 동이 난 상황이었다.
3월 2일, 3월 1일 날짜를 앞으로 당겨 알아보다가 1일 비행기 티켓을 끊고 며칠 지인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유방암 수술 전 필요한 물건들을 알아봐 주고 함께 골라준 지인 덕분에 마음 든든히 비행기 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첫째 고양이 가지의 컨디션이 나쁘지 않아서 지인에게 방문 탁묘를 부탁해 놓은 상황이었다.
가지는 올해 초 시력을 잃어 거실에 펜스를 설치해 두고 따로 지내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우당탕 소리가 나서 벌떡 일어나 가지에게로 갔다.
가지는 아주 약간의 변비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동안은 심각하게 문제가 되지 않다가 이날, 일이 벌어졌다.
내가 암진단을 받으면서 정신이 다른 곳에 가있을 때가 많아 가지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사이에 가지는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날이 쌓였고 그날 밤은 변을 보려고 힘을 주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면서 펜스 안 여기저기 부딪히고 있었던 것이다.
장 마사지를 해주면서 한 시간 동안 둘이 사투를 벌였지만 일은 해결되지 않았고 가지도 지쳤는지 변 보는 것을 포기하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가지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내 몸 걱정하느라 23살 묘르신 가지오빠의 건강검진은 미뤄두고 있었다. 역시 내가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는데..
혈액검사, 엑스레이, 초음파 등등 종합검진에 준하는 검사를 마쳤다.
평소보다 혈압이 매우 높게 나왔는데 아마 혼자 화장실을 가려고 힘을 계속 준 것에 따른 영향일 것이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안압이 높아져 시력을 잃는 것 또한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했다.
내가 좀 더 꼼꼼히 살폈어야 했는데.. 가지에게 너무 미안했다.
가지의 증상은 변이 단단하다기보다는 노화로 인한 근육부족, 약간의 디스크 때문에 변을 밀어낼 힘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일단 급한대로 관장을 하고 이틀 후에 다시 병원에 들르기로 했다.
그 사이 증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싶었지만, 관장으로 인해 변은 가지의 의사와 관계없이 흐르고 오히려 더 손이 많이 가는 상황이 되었다.
식욕도 없어서 식욕촉진제를 먹여가며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이제 수술을 위해 떠나야 하는 날은 3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가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12. 모두의 도움으로 수술하러 갑니다.
3일동안 가지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지만, 다행히 병원에서 가지를 맡아주기로 하셔서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나의 암 수술을 위해 육지로 향했다. 내가 수술하러 가있는 동안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강한 아이니 잘 버텨주겠지.. 제발 내가 돌아올 때까지만 버텨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채영이와 채린이 두마리 고양이는 감사한 이웃의 도움으로 방문 탁묘를 맡기기로 했다.
입원하면서 필요할만한 짐들을 하나둘씩 챙겼다. 수술하고 나면 팔이 잘 안올라가 티셔츠는 입고 벗기가 어려우니 지퍼 달린 옷과 수술하고 나면 발이 시리다고 해서 따뜻한 수면양말등을 캐리어에 차곡차곡 넣었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한다. 태풍 같은 비바람이 불었다가, 공항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지만 거센 바람은 여전했다.
지긋지긋한 바람의 섬을 떠나 인생에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암수술을 하러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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