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허피스 바이러스가 김녕 치즈마을에 퍼졌다
평화로운 브릭스제주 카페 마당에 상주하는 김녕 치즈마을의 고양이들에게 허피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다.
허피스 바이러스는 사람으로 치면 감기 같은 것인데, 고양이들에게는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보통 날씨가 추워질 때, 환절기나 일교차가 큰 계절에 발현되는 바이러스이므로 동네 고양이를 돌본다면 이때 아이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전염성도 빨라서 같이 식기를 나눠쓰거나 분비물에 의해서도 전염되므로 소독과 위생에도 철저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필통씨, 탄광이, 너구리 이렇게 세 마리가 늘 삼총사처럼 붙어 다닌다. 서로 의지하며 살아서 좋지만 바이러스가 퍼질 때는 계속 붙어있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처음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건강의 상징 필통씨(까만 고양이)가 밥을 거부하면서였다.
먹성 좋은 필통씨가 식사를 거부하다니 보통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손님이 주는 간식도 먹지 았아서 유심히 보니 맑은 콧물을 흘리고 있었다.
김녕치즈마을의 이인자이자 필통씨의 보좌냥인 너구리에게 필통씨의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해 주길 부탁했다.
허피스 바이러스는 따뜻한 것을 싫어해서 추워지지 않게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마침 구비해 놓은 항생제가 있어서 이틀정도 항생제를 먹이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때는 허피스라는 생각을 못했고, 필통씨의 상태도 많이 심각하지는 않았었다.
항생제를 이틀 먹이고 나서도 필통씨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콧물과 재채기가 심해지고 기력이 점점 더 없어지고 있었다. 이때서야 허피스라는 확신이 들었고, 인터넷에 허피스 관련 정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허피스는 아기 고양이들이 쉽게 걸리는 바이러스인데, 면역력이 약하면 눈물과 눈곱이 심해져서 그대로 방치하면 눈이 붙어버려서 실명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우리 마당 고양이들 어릴 때에도 허피스에 걸려서 안약을 넣어주거나 약을 처방받아서 먹인 적이 있었는데, 성묘의 허피스는 나도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인터넷에 성묘 허피스 치료 후기를 보니 치료를 받으면 분명히 나아지기는 하는데 치료비가 어마어마했다.
누구는 일주일에 5백만 원, 누구는 3백만 원, 그냥 약만 처방받아도 5일 치에 9만 원이라는 후기들이 있었다.
아기 고양이 허피스 약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던 것 같은데 뭐지? 싶어서 우리 고양이들이 자주 가는 병원에 문의를 했고, 4킬로 기준 5일 치 약값만 9만 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필통씨는 몸무게가 8 킬로그램 정도 되니까.. 약값만 20만 원 정도가 맞는 말이구나 싶었다.
전염성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으면 격리와 소독을 해야 하므로 병원비가 몇백만 원 나오는 게 말이 되는 것도 같았다.
우선 약만 받아서 먹여보기로 하고 허피스 약을 받아 투약하기 시작했다.
복용 용량과 관련해서는 한 번에 최대 200mg까지 투여가 가능하다는 등 수의사마다 의견이 다른데, 지인이 본업을 살려 외국의 연구 사례를 찾아보았고, 약을 많이 투약한 쪽의 그룹이 회복이 빠르다는 의견을 주었다.
필통씨가 처음 아팠던 데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던 터라 과감하게 투약해 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첫날은 250mg 약 한 알을 아침저녁으로 먹였다. 처음에는 챠오츄르도 입에 안대서 후라이드 치킨을 사다가 닭가슴살에 싸서 먹였더니 다행히 잘 먹어주었다. 약 한 알이 큰 편이라 4등분으로 나누어서 먹였다.
허피스 약이 쓴 편이라서 고양이들이 잘 안 먹는다고 했는데, 치느님은 옳았고, 평소에 고양이들이 환장한다는 챠오츄르를 먹이지 않았던 덕분에 약먹일 때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허피스 약을 먹인 지 이틀째 되는 날 다행히 입에도 대지 않던 캔을 먹어주기 시작했다 ㅠㅠ
다 먹을 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밥그릇은 바로바로 락스로 소독 후 햇볕에 말렸다.
사진은 햇볕 쬐는 필통씨 옆을 지키는 보좌냥 너구리씨
탄광이는 필통씨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3박 4일 정도 외박을 했는데, 워낙 예민하고 민감한 아이라 바이러스에 전염되지 않으려고 다른 곳에 갔나? 싶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 신기하게도 너구리는 필통씨 옆에서 계속 붙어있었는데 허피스에 전염되지 않았다!
따뜻한 곳으로 들어와서 자라고 해도 기력이 없어서 힘든지 말을 듣지 않고 고양이 집에만 있길래 유리병에 뜨거운 물을 넣어서 수건으로 한번 감싸서 넣어주었다. 고양이 집 안 공기가 따뜻해져서 좋았는지 아픈 동안 고양이 집에서만 잠을 잤다.
필통씨 약 먹이느라 간식을 필통씨만 줬더니 너구리가 좀 의기소침해져서 나중에는 너구리도 간식을 나눠주었다.
필통씨 간호하느라 너구리도 힘들 텐데 고생한다 요놈아.
그리고 마침내! 일주일치 약을 다 먹고 필통씨는 건강을 회복했다. 사람에게 다가와서 부비기도 하고, 아픈 내내 마당에만 있던 녀석이 잠시 놀러 나갔다 오기도 하는 걸 보고 이제 살았구나 싶어서 마음이 놓였다.
허피스는 다 나았지만 콧물이 좀 오래가서 동물약국에서 항생제를 일주일치 처방받아서 먹였고, 지금은 완전히 건강해졌다.
제주도에 와서 길냥이들 밥을 주기 시작할 때만 해도 이런 일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니 TNR을 해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그리고 이제 고정적으로 오는 고양이들의 나이가 5살을 넘어가면서 이 아이들의 미래도 내가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3박 4일 외박을 마치고 돌아온 탄광이도 안타깝게 허피스에 걸렸지만 필통씨만큼 심하지는 않아서 약을 먹이고 금방 좋아졌다.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