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녕치즈마을 마당냥이 너구리의 구내염 치료기
고양이들에게는 잔인하고 무서운 병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구내염.
입안에 염증이 생겨 밥을 먹기가 불편해지고, 심해지면 침을 많이 흘리고 고양이에게 가장 중요한 일상 중 하나인 그루밍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동네고양이들 중 유독 털이 꼬질꼬질한 아이들이 있다면 아마도 구내염 때문에 그루밍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 마당에서 밥을 먹는 고양이 중 한 마리인 너구리도 구내염이 있다.
아마도 2018년? 그쯤부터 보인 녀석인데, 이곳저곳을 떠돌며 영역싸움을 하다가 원래 있던 마당냥이인 필통이에게 제압당하고 이곳 김녕치즈마을에 눌러앉았다.
얼굴은 너무나 귀염상인데, 손도 안타고 아직까지도 간식 주는 손에 냥냥펀치를 날려 피해자를 만드는 녀석이다.
이 친구는 올때부터 구내염을 가지고 있었는데, 김녕치즈마을에 살면서 좋은 사료를 먹고 티앤알도 하고 나니 살도 포동포동 찌고, 구내염도 사라졌었다.
가끔 환절기에 증상이 보이면 동물약국을 판매하는 곳에서 항생제를 사다가 먹이면 곧 나아지고는 했었다.
하지만 올해초부터 급격하게 살이 빠지면서 침을 흘리기 시작했고, 이런저런 이유(영업부진, 너구리 포획어려움등..)로 너구리의 진료를 미루다가 이제는 결심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지난주 포획을 시도했으나 실패...
이유는 아래 영상 참조...............
포획틀을 설치하고 간식을 잔뜩 넣어놨는데 자꾸 필통씨가 들어가서 ㅠㅠㅠ
이날의 너구리 포획작전은 대실패를 해버렸다.
다른 고양이 TNR때문에 포획틀 설치해 놓을 때면 늘 필통씨가 들어가 버리는 바람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귀엽지만 이럴때는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진짜 안 도와주는 필통씨 ㅋㅋㅋ
그래서 방법을 바꿔서 필통씨가 없는 틈에 너구리를 카페로 유인해서 포획을 시도했고, 다행히 시간은 좀 걸렸지만 성공했다!
마침 동물병원 진료 시간과 딱딱 들어맞아서 케이지에서 대기하는 시간 없이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영문도 모른채 병원에 잡혀온 억울한 너구리씨
원래는 검사를 하고 발치를 할지 처치를 할지 고민해 보기로 했지만, 다시 잡기 어려운 녀석이라 이날 바로 검사 후 가능하면 수술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정말 운이 좋게 이날 오후에 수술할 수 있는 시간이 비어있었다.
온 우주가 우리 너구리의 수술을 돕는다!!!
너구리의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는데 심장이 쿵.
그럴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술 동의서를 작성할 때면 늘 마음이 서늘해진다.
너구리를 맡기고 다시 카페로 돌아왔다.
몇시간 후 동물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웬만하면 검사 후 마취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너구리가 워낙... 야생성이 심해서 마취 후에 검사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예상했던 바였다. 5년이 넘게 밥을 먹으면서도 손을 안타고 냥냥펀치를 날리는 녀석이니 그럴만했다.
그리고 그 후로 2시간이 조금 안되어 수술이 끝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마침 카페에 손님도 없어서 일찍 마감을 하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완전 럭키비키잖아?!
너구리의 수술 사진을 보는데 아프지 않은 나머지 이빨들은 생각보다 상태가 괜찮았다. 하지만 송곳니 두 개가 모두 부러져있었고, 어금니의 상태가 매우 안 좋았다. 이미 구내염이 진행된 지 오래라 치아에 구멍이 나서 녹아버렸고, 결국 총 네 개의 치아를 뽑았다고 했다.
다행인 건 엑스레이나 혈액검사상으로 이빨과 관련된 수치들 외에 특이사항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장사상충도 고양이 에이즈 검사도 이상 없음이 나왔다.
병원에서 나와 너구리를 데리고 원래 지내던 마당으로 돌아왔다.
마당 고양이들이 와서 인사를 해주는데 기운이 없는지 너구리는 한참 동안 케이지에서 나오지 않았다.
인간도 스케일링만 해도 너무 아파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 먹는데, 너구리는 얼마나 힘들지..
그저 잘 이겨내 주기만을 바라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루쯤 안전한 공간에 두고 싶었는데, 갇혀있으면 또 답답할까봐 마당에 풀어주었다.
비틀거리면서 대문 밖으로 나가려고 해서 간식으로 유인하고 마당 안쪽에 머물 수 있게 해 주었다.
생각해 보면 답답하더라도 하룻밤정도는 안전한 곳에 두는 게 맞았던 것 같다.
혹시나 비틀거리다 사고라도 날까 봐 자다 일어나서 CCTV로 너구리가 잘 있는지 계속 확인을 해야 했다.
저 붕대는 어제 집에 가면 풀어주라고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입으로 풀어내겠지? 싶었는데 오늘까지도 붕대는 멀쩡히 감겨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간식을 주면서 붕대를 풀기 위해 시도했지만 동체시력이 어찌나 좋은지 내 손은 붕대에 닿지도 못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무기를 다 제거해 주셔서 냥냥펀치를 아무리 맞아도 안 아프길래 500대 정도 맞고 붕대 끝을 잡아 어느 정도 나풀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 확인을 해봤더니 거슬리는지 입으로 물어뜯고 탈탈 털어서 붕대를 쏙 빼냈다.
똑똑한 구리구리씨~!!
붕대도 풀고, 인간도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으니 바구니에 쏙 들어가서 잠이든 너구리씨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아마도 칼리시 바이러스를 심하게 앓았고, 그 때문에 목에 염증이 심하게 있다고 했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을 때는 괜찮지만 환절기나 컨디션이 떨어지면 염증이 또 발현될 거라고..
인친님들 댓글 중에 모듀케어가 구내염 고양이들에게 좋다기에 일단 먹여보기로 했다.
그나저나 고양이 구내염치료는 비용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든다. 주변에 개인적으로 치료하는 분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라고 예상을 했는데, 병원 영수증이 끝도 없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ㅎㅎ
그래도 다행히 카페에 왔던 손님들, 주변에 지인분들이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주셔서 부담을 많이 덜었다.
병원비도 병원비이지만 사실 전신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나의 결정에 의해 행해진다는 것이 마음이 많이 힘든 부분이다.
나는 이 아이를 위해 하는 일이지만 모든 결과가 다 좋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에 대한 부담도 걱정도 크게 다가온다.
다행히 너구리는 수술도 잘됐고, 마취도 잘 깨어나서 밥도 잘 먹고, 오늘 편안하게 자는 모습까지 보았지만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을 케어한다는 건 정말 감정소모가 너무 큰 일이다.
물론 그만큼 행복감도 위로도 많이 받기에 그 모든 걸 감수하면서도 동물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제주도는 이번주 장마예보가 있는데, 오늘은 이렇게나 멋진 노을을 보여주었다.
너구리의 성공적인 수술을 축하하는 걸까?
내일부터는 많은 비가 내린다던데, 사람도 길 위의 동물친구들도 모두 피해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란다.